첫 번째,

올해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왜 대학원을 선택했나요? 일러스트레이션은 특히 학위가 영향을 끼치지 않는 분야인데, 바로 활동에 뛰어들지 않고 대학원 진학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혼자 어찌해야 할 지 모를 막막함에 힌트를 찾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디자인을 다루는 학문적인 관점을 알고 싶었습니다. 기술만이 아니라 작업이 가지는 의미를 배우고 싶었는데, 그 지점을 채워줄 수 있는 곳이 대학원이라고 생각했어요. 학부 시절의 경험 때문인지, 다른 분들의 디자인 철학을 보고 배우면서 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먼저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해야 제가 그림 그리는 일을 쉽게 그만두지 않고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았고요.

두 번째,

디자인은 비전공자가 들어오는 일이 드물지 않은 분야 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비전공이라는 지점이 크게 특징지어질 요소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비전공이라는 점을 유독 신경 쓰는 까닭이 있나요?

확실히 처음 대학원을 준비할 때도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이 지원하는 케이스는 이미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중에도 일러스트는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작가 활동을 시작하신 분들이 많아요. 그러니 이렇게 신경 쓰는 까닭의 기저에는 제가 가진 불안과 조심성이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디자인 영역의 회사 업무나 학원의 교육과정을 오래 받은 경험도 없어 더욱 그 사실이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세 번째,

과가 다른 선택이었던 만큼, 시각디자인과 일러스트 분야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디자인 중에서도 일러스트를 선택한 까닭이 있나요?

구구절절 부가적인 의미를 빼면 사실 단순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건 손을 움직여 선과 색을 다루는 드로잉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어떤 모습이나 장면 등 이미지 언어로서 이루어지는 소통을 좋아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글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것을 전하거나, 혹은 (전공이었던 철학처럼) 글이라는 매체가 주는 거리감을 뛰어넘어 다가갈 수 있는 이미지 언어의 힘이 좋았습니다.

다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별개의 의미라, 그것을 소통의 방법으로 삼는 것에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네 번째,

최근의 작업에는 동물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작업할 때 관심 있는 소재 혹은 관심 있는 영역이 있다면?

영화가 드러내는 비현실적인 세상과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동물과 식물은 이전에도 어느 정도 관심은 있었지만, 작년부터 특히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동물을 그리는 게 가장 즐거웠어요. 제 내부의 변화도 있겠지만 환경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들리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아예 주변 환경 자체를 주제로 잡고 진행한 작업도 있는데, 제가 그만큼 주변 환경이나 사회 요소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다섯 번째,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그림 스타일, 혹은 앞으로 잡아가고 싶은 방향이 있나요?

아직 스스로 저의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은 찾아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몇몇 분들께 제 색깔이 있다는 말씀은 들었는데, 스스로 그것을 찾아내고 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지점인 것 같아요. 앞으로 배우고 싶은 것이라면, 레이아웃을 잘 활용하고 싶어요. 삽화의 느낌이 아니라 장식이나 레이아웃, 구도 등을 그림에 활용하시는 작가님들을 좋아합니다. 전시, 웹, 제품, 벽화 등 작품을 보이는 다양한 결과 형식이 있고, 작품이 담기는 각각의 방식에 맞는 언어가 있는데, 그런 스타일의 작업은 가장 넓은 방식의 언어에 통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섯 번째,

그렇다면 본인의 작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특징을 꼽아주세요.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내는 걸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그림의 분위기가 대체로 정적이고 조용한 편이 되는 것 같은데, 그런 지점을 좋아하면서도 그와 다른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 아쉬움이 많이 남는 편입니다. 그리고 선이 확실하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살리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일곱 번째,

대학원에서의 첫 작업으로 비주얼 에세이를 선택했습니다. 그 작업에 대해 더 설명해본다면?

이미지를 통한 표현과 글을 통한 표현을 모두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커진 시기였습니다. 주제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글과 이미지 각각으로 전달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서, 비주얼 에세이라는 방식을 알게 되었을 때 둘 모두를 활용해보자는 생각에 선택했습니다. 지난 상반기가 유독 여러 가지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 시기라, 더 담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제가 참고했던 비주얼 에세이보다 글의 양이 훨씬 많은 에세이가 되었습니다.

여덟 번째,

웹페이지에도 텍스트와 이미지 메뉴를 만들고, 이후로도 일러스트와 함께 글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해왔었어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글과 그림을 함께 다룬다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본다면요?

글로 된 매체가 전달하는 방식에도 그만큼의 매력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일러스트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도 분명 제가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앞에서 얘기한 비주얼 에세이는 글과 그림이 딱 나뉘어 있었는데, 그것보다 각 방식이 가진 장단점을 더 잘 활용된 작업을 만들어내는 일은 저의 이상적인 목표 같은 것입니다. 일단 지금의 단계에서는 글과 일러스트 각각을 통해 제대로 말할 줄 아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 중입니다.

아홉 번째,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글과 그림 등, 작업에 사용되는 각각의 표현법이 갖는 특징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어떤 표현법을 사용하든 상관없이 공통으로 신경 쓰는 부분이나 고려하고 있는 방식이 있을까요?

어느 표현법을 다뤄도 항상 공통적인 점은 간접적으로, 비유를 통해 말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글은 상황을 낱낱이 서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직접적이고, 이미지는 사실적인 장면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직접적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비유나 상징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에 더 감동을 느낍니다. 물론, 이건 취향의 문제겠지만요. 그렇게 한 단계의 과정을 거쳐서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열 번째,

마지막으로 이후에 하고 싶은 작업이나 주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해줄 수 있나요?

에세이와 유사한 느낌의 이야기를 하는 콘텐츠를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글일 수도 있고 그림일 수도 있지만, 그림이라면 만화 형식이 될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 들어올 때 생각해두었던 것으로는 제가 텍스트로만 접했던 철학 이론을 다른 시각 언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상징처럼 사용할 수 있는 캐릭터 같은 걸 하나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