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윤다솜 작가님을 대표한다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크림슨 캣입니다. 19년도 Digital Arts와 진행하신 인터뷰에서 크림슨 캣을 장난기와 호기심이 많은 캐릭터로 설명하신 것을 읽었습니다. 크림슨이라는 색을 사용하신 까닭이나, 그 사이에 크림슨 캣에게 추가되거나 변화된 부분이 있는지, 작가님께서 설명하시는 크림슨 캣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사실 크림슨 캣은 처음부터 이 캐릭터를 브랜드화 해야겠다는 이런 거창한 생각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고, 친구들과 일러스트 스터디를 하다가 나오게 된 캐릭터입니다. 제가 크림슨 이라는 주제를 정했었고, 그때 처음으로 빨간 고양이를 그리게 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포트폴리오를 쌓기 시작하면서 크림슨 캣을 주인공으로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나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서 그리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제 취향이나 성격이 많이 녹아있는 캐릭터입니다.

두 번째,

최근에는 크림슨 캣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크림슨 캣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시는 이야기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주제를 표현하시는 데 있어 캐릭터를 고르신 작가님만의 기준이 있나요?

메인 캐릭터는 크림슨 캣이지만, 가끔 주제에 따라서 더 어울리는 동물이 있다면 다른 동물들을 그리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최근 작업 중에서 ‘Vampire Weekend’의 ‘Bambina’라는 곡에서부터 영감을 얻은 일러스트에서 메인 캐릭터는 중세 시대의 사자인데요, 가사 중에서 콜로세움과 평화라는 소재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고양이보다는 사자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사자를 주인공으로 그렸습니다. 또 크림슨 캣과 대립하거나 친구로 나오는 캐릭터 또한 다른 동물들로 표현하는데요, 최근에는 쥐를 그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쥐 캐릭터도 많이 그렸습니다.

세 번째,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다루시는데도 작가님의 작품은 모두 어떤 하나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개별적인 일러스트에서 한 세계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번 놀랍습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세계를 담기 위해 모든 작업에서 공통으로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혹 의도하신 게 아니더라도 작업 간의 통일성을 위해 고려하시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전문성을 위해서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스타일은 항상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기본 도형을 베이스로 사물들을 표현한다든지, 선의 굵기라던지, 사용하는 컬러들도 같은 톤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고, 무엇보다 제가 가지고 있는 취향과 가치관을 파악해서 일러스트에 녹여내기 때문에 일관적인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네 번째,

여러 영화와 음악, 레고와 플레이모빌 같은 놀이에서부터 전통적인 건물 양식과 사회 현상까지. 작가님께서 영감을 잡아내시는 대상은 정말 다양한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즐겨 찾으시는 소재의 원천이 있을까요?

말씀해주셨던 주제들의 공통점을 말해보자면 다 제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가장 즐겨 찾는 소재를 하나만 꼽아보자면 ‘동물’인 것 같습니다. 정말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사람을 그리는 것보다 동물 그리는 것에 더 흥미가 있습니다. 동물마다 개성이나 특성이 뚜렷한 점도 좋고, 순수하고 본능적인 면도 좋아합니다.

다섯 번째,

개인적으로는 작가님의 색깔로 표현하시는 영화 장면들이나 영화에 나올법한 캐릭터를 그리시는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엔칸토델마와 루이스를 표현하신 작품도 정말 좋았어요. 이제 2022년이 거의 끝나가는데, 그 외에도 올해 작가님께 가장 기억에 남았던 영화나 콘텐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올해 굉장히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봤는데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최근에 제 작업 중에 ‘먼지차별’이라는 작품이 선정된 다양성동 영화제에서 봤었던 ‘해피해피 이혼 파티’ 라는 다큐멘터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엄마의 15년 차 이혼을 축하하기 위한 두 딸의 준비 과정과 파티 현장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은 작품인데요, 재미있기도 하고 중간중간에 울컥하기도 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행복하게 꾸려나가는 모습이 좋아서 기억에 남습니다.

여섯 번째,

작가님의 스타일로 빼놓을 수 없는 지점은 눈에 띄는 색감과 선과 면의 활용 외에도, 액자 틀처럼 떨어지는 깔끔한 디자인적 레이아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지점이기도 해요. 그런 레이아웃 작업에서 참고하시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제가 대학 시절에 디자인을 전공하기도 했었고, 딱 떨어지는 레이아웃과 프레임을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점들이 작업에 녹아 나왔던 것 같습니다. 한국의 불화 작업을 보면 굉장히 장식적이면서도 그려져 있는 요소 하나하나마다 의미가 담겨있는 점이 재미있는데요, 그래서 거기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았고 서양 중세 시대 일러스트에서의 장식적인 프레임에서도 영감을 받았습니다.

일곱 번째,

디지털 드로잉 외에도 지점토나 스킬자수, 종이 공예까지 활용하여 작업하셨는데, 작가님께서 느끼신 디지털 드로잉과 다른 매력이나 장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가장 재미있게 하셨던 작업 방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디지털 드로잉에서와는 다른 질감을 줄 수 있다는 게 재미있는 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업하는 입장에서도 디지털 작업에서는 실제 감촉을 느끼기가 어렵고, 작업하는 과정도 항상 똑같은데 실제로 만져지는 작품을 할 때는 색다른 자극을 줄 수도 있고,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도 있어서 좋습니다. 작업하면서 제일 재미있었던 건 예전에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작은 종이집을 만들었는데, 제가 항상 관심 있고 해보고 싶었던 프로젝트여서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종이로 된 장난감 작업을 많이 해보고 싶습니다.

여덟 번째,

작가님께서는 개인 작품과 외부와의 협업 중 무엇 하나 빠짐없이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것 같습니다. 최근 작가님께서 진행하신 두 작업 영역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요? 그리고 일러스트 작가로서 개인작과 협업은 어느 정도의 비율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최근에는 사실 개인 작업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커리어적으로는 좋은 현상이지만 아무래도 협업을 할 때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제 욕심껏 마음대로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개인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도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개인작과 협업의 비율은 3:7 정도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홉 번째,

온라인상에서만 보이는 디지털 작업이나 영상 외에도 실제 전시와 제품 디자인, 벽화작업까지 정말 많은 형태의 작업을 진행해 오셨는데, 작가님의 작품을 드러내는 다양한 방법 중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가장 재미있으셨던 것이나 작가님의 의도가 가장 잘 표현되었다고 느끼신 것 등, 좋아하시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최근에 했던 작업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내향인의 귀가’라는 작업이었습니다. 제가 내향인인데, 밖에서 잘 놀다가도 집에 돌아가는 길에 느끼는 쓸쓸함이나 피곤함, 소모된 듯한 기분을 표현하고 싶었고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노래와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던 작업입니다. 사실 연작으로 집에 들어간 후의 행복해하는 모습도 기획했는데 아직 시간상 완성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기획할 때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이 잘 표현되었고, 애니메이션이지만 그래픽 노블처럼 컷을 나누는 것을 시도해 본 것도 재미있었고, 일러스트나 애니메이션의 완성도도 제가 만족할 수 있게 잘 나와서 좋아하는 작업 중의 하나입니다.

열 번째,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은 항상 어렵고, 어디까지 담아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변화의 만찬'이나 '먼지 차별' 등, 성차에 관련된 문제를 작가님의 방식대로 무겁지 않게 표현하시는 작업은 항상 인상 깊습니다. 이렇게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된 문제를 다루실 때,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선 작가로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다룰 때는 항상 작품으로써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예술 분야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큰 경계심 없이 파고들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건강한 마인드를 유지하면서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이나 제가 느끼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전달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합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상황이나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제가 원하는 이상향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하기 때문에 더 무겁지 않게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열한 번째,

일러스트레이터, 특히 프리랜서에 대해 이야기하면 일과 생활의 분리가 어려워 힘들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곤 합니다. 최근에는 개인 단위로 모든 걸 혼자 진행하는 형태라서인지, 작업하면서 외로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어요. 작가님께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프리랜서로서 오래 활동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어떤 것이 있으셨나요? 그리고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사실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타입이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같은 고충을 겪고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작가나 프리랜서인 지인들이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프리랜서로서 힘든 점은 모든 것을 제가 관리해야 된다는 점입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부서가 나뉘어 있고 맡은 역할을 수행하면 됐었지만, 프리랜서가 되니 브랜딩하고 홍보하고 클라이언트와 스케줄이나 견적이나 프로젝트 내용에 대해서 조율하고, 일을 수행하는 등의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해야 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처음에 가장 어려웠습니다. 또한 스케줄 관리도 누가 강제적으로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점이 어렵습니다. 이제는 나름대로 익숙해져서 하루의 루틴을 정해놓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열두 번째,

마지막으로, 앞으로 더 다뤄보고 싶으신 작업 방식이나 분야, 이야기하고 싶으신 주제가 있으신가요? 혹은 참여하고 싶으신 프로젝트 등이 있으신가요?

지금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제가 재미있게 보고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 gif와 종이 장난감을 만드는 것인데요, 가능하다면 크리스마스 중에 공개하려고 합니다. 앞으로는 디지털 작업이 아니라 실제로 만져지는 작업을 많이 해보고 싶습니다. 종이라던지, 천이라던지, 다른 소재를 사용해서 작업의 영역을 넓히고 싶습니다.